retrospect

2025년 반기 서한

우울과 고독과 고난의 멜로디

2025. 6. 25.

어떻게 지내시나요?

한국은 6월 3일,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네요. 현시점의 복잡한 정치, 사회, 경제 상황이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습니다. 언제나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보다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 주는 분들이 더 귀합니다.

당장 2년 전만 해도 국내외 이슈에 빠삭했지만, 이제는 손을 놓았습니다. 더 이상 대외적인 뉴스를 찾아보지 않고요. 굵직한 사건들은 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전해 듣고 있습니다. 리서치가 필요하다면 관련한 정보를 자세히 탐구하지만, 전반적으로 그러지 않습니다. 국제 정세에 관심이 줄었기 때문이겠지요.

여전히 사랑과 행복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서 언제나 평온하길 바라며, 이 글을 띄웁니다.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마세요

작년 5월, 처음으로 필리핀 보홀에 방문했습니다. 두 달 뒤부터는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했지요.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스쿠버 다이빙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훌륭한 스승과 동료들 덕분에 부족함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일이 생계로도 이어질 수 있다면, 더없는 행운이겠지요. 우리는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그리고 돈이 되는 일 사이에서 끊임없이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어떤 선택은 현실을 외면해야 하고, 어떤 선택은 꿈을 포기해야 하지요.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잘하는 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잘하는 일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국 돈이 되는 일과 이어질 수 있지요. 우리는 더 이상 하나만 선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함께 가다 보면 자신의 가치를 끊임없이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게도 좋아하는 일이 생계로 이어졌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잘하기 위해, 멈추지 않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쉽게 포기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가치는 여러분만이 결정할 수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만연한 세상에서, 이왕이면 시기 질투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위대한 여정은 거창한 출발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불완전한 아름다움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피상적인 지식에 이끌려 근시안적으로 흐르고, 두려움과 공격성, 질투, 분노, 좌절감으로 우리의 잠재력을 억누르곤 합니다. 어린 시절 순수하고 자유롭게 나닐 수 있었던 행동거지는 이제 곁에 없지요. 사회는 논리와 예측 가능성을 요구했고, 우리는 그에 익숙해졌습니다. 그 사이 사랑은 계산되거나 숨겨지기 바빴지요.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억제하는 법을 먼저 배웠습니다. 외로움과 우울을 배웠습니다. 고독을 배웠고, 고난을 겪었습니다. 억눌린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고, 마음은 날카로워졌습니다. 사람을 곁에 두지 못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상대방에게 완벽한 타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상처를 주었고,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불안과 질투, 오해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착각이었지만, 결국 상처는 내 몫이었습니다. 그런 삶이었습니다. 한동안, 그랬습니다.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게 당연함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래 걸렸습니다. 근시안적 판단을 멈추고, 순간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 또한 쉽게 얻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차분히 자신을 돌아봅니다.

불완전함 속에서 피어나는 사랑이 있습니다. 그 사랑은, 혼자서는 보지 못했을 풍경을 함께 보게 합니다.

교만의 벽

가끔은, 내가 아는 작은 세계가 전부인 줄 압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쉽게 서운해하고, 자주 상처받지요. 알고 있다는 착각은 듣는 태도를 무디게 만듭니다. 변명을 늘어놓게 되지요. 내가 옳다는 생각이 깊어질수록 사람들과 사이가 멀어집니다.

권위주의라고 하지요. 상위 권위에는 강압적으로 복종하는 반면 하위에는 오만하게 행동하는, 그런 태도입니다. 저는 저보다 배울 게 없다고 느낄 땐, 말과 태도에서 우위 의식이 드러나더군요. 사실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애써 외면해 왔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리석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무심했고요.

지금부터라도, 변명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것에 과하게 의미를 담다 보면, 모든 게 덧없어지더군요.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질문으로 이끄는 것도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나은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존중은 필요하며,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먼저 듣고, 내 말보다 남의 말을 먼저 둡니다. 충분히 마음을 비워내고,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여전히 배우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운이 좋게도 훌륭한 어른들이 옆에 있어 주고 있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으며 살아가겠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길을 비춰주셔서, 붙들고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비록 느릴지라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

최고의 자산은 건강입니다.

상반기 내내 건강 이슈가 있었습니다. 뎅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며칠 동안 고열에 시달렸고, 기침감기가 심해 목소리를 잃었지요. 전반적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듯합니다.

카페인을 줄이고 있습니다. 적당량의 카페인 섭취는 집중력을 높인다고 하지만, 저는 카페인의 효과를 잘 느끼지 못합니다. 오히려 수면을 방해하니 줄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커피 대신에 물을 마시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그네슘은 근육 이완과 신경 안정에 도움이 되어 수면의 질을 높여줍니다. 멜라토닌은 생체리듬을 조절해 자연스럽게 잠이 들게 하지요. 두 가지를 함께 복용하면 숙면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불면에도 효과가 있다고 해요.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매일 자기 전에 챙기고 있습니다.

운동을 여러 가지 시도하고 있습니다. 헬스는 너무 정적이라 잘 안 맞더군요. 다른 운동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감사의 말씀

짧은 서한을 씁니다. 크고 굵직한 사건보다, 작고 사소한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사유할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일들은, 저를 좋게 봐주시고 때로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으신 어른들 덕분에 생겼습니다. 제 방향을 바로잡아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다음을 기약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이 정도로 반기 서한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연말에는 전하지 못한 이야기와 더 나아진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평안을 빕니다. 제가 이렇게 살아가는 건, 결국 여러분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언제나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자주 연락드릴게요.

지난 6개월, 마음속에서 길어 올린 최고의 문장을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 존재했는지 서사가 존재하지만, 연속성에는 의구심이 든다.

담담해졌다고 생각했을 때쯤, 눈물을 훔치며 달아나기에 바빴다.

불안을 점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소생일 것이다.

그 사람은 마치 동물의 숲 캐릭터처럼 순수했어요.
따뜻했고, 마음이 참 고운 사람이었죠.
반면에 저는 너무 어두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였을까요?
상처는 제가 더 많이 줬던 것 같네요.
지금도 가끔 생각나요.
서울대입구역에서 그날도 평소처럼 데이트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말했어요.
우리 그만 만나자.
그땐 아무 말도 못 했어요.
근데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따뜻하게 부드럽게 미안하다고 할 걸.
저는 철학을 공부하며 살았고
그래서인지 세상은 아직도 제게 외롭게 다가오네요.

- 작자 미상

현실을 무시할 수는 있지만, 현실을 무시한 대가는 무시할 수 없다.

실로 내일이라는 길흉의 운명을 알 수 없는 지상 세계, 그 미지의 불안을 헤쳐 나아가는 아기자기한 스릴, 그야말로 환상세계 같은 현실을 어떻게 총명하게 헤쳐 나가느냐가 사는 것이고 천국보다 몇 배 낫다고 생각한다.

- 천경자 화백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깨달은 것은 팁은 면대면 인간관계의 커뮤니티즘과, 개인의 노력과 성취의 표상이자, 별다른 스킬셋 없는 일반 서민들의 일자리를 대변하는 젖줄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한편, 여기서 서비스하는 서버는 좀 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유의미하게 소득이 오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고급 레스토랑을 갈수록 서버가 얼마나 더 열심히 스스로 화술과 서비스 정신, 그리고 음식에 대한 이해를 갈고 닦았는지가 티가 났다.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더 높은 비율의 팁이 붙는 것은 이처럼 고급 스킬셋을 학습해서,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버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처럼 팁 문화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이고 부당하다 느껴지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이런 행태적 비효율이 경제적으로 정확히 환산할 수 없는 긍정적 형태의 외부효과를 갖는 것이다.

- 네이버 블로그, Seung's 투자와 생각

모든 게 잘 맞아 돌아갈 때가 그 모든 걸 부숴야 하는 때이다.

그다음으로 잘 작동하는 것을 찾을 때까지 부수고 또 부숴라.

여러분이 알아차린 것에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그것에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마세요. 그것은 무엇인가를 보여주거나 상징하지 않습니다. 세계를 설명하는 이론도, 교훈을 주는 우화도 아닙니다. 말을 더하지 마세요. 수집하려 들지도 말고, 사라지게 놔두세요. 참을성 있게 다음에 알아차릴 것을 기다리세요.

- 벌린 클링켄보그, <짧게 잘 쓰는 법>

책임이 사라진 세상에서 스스로 책임을 걸머진 사람들이 그린 궤적을 따라 걸어본다면 우리는 뜻밖의 삶을 만나게 된다.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던 이들이 유가족이 되어 함께 우는 일을 지켜보는 건 매번 경이로운 경험이다.

참사가 발생했을 때 사회의 시선은 모두 그 현장으로 향한다.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사건이었다,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겠다, 재발방지대책을 세우겠다’며 되뇐다. 한동안 뜨겁게 화제가 되고 수습 과정이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보도된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면 모두의 관심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진다. 참사의 처참함과 충격만 남긴 채, ‘누구의 책임인지, 누가 처벌을 받았는지, 진실 규명은 제대로 되었는지, 어떤 재발방지대책이 만들어졌는지’ 참사 이후 밝혀져야 할 정작 중요한 이야기들은 쉽게 잊힌다. 망각 속에서 책임과 처벌은 경미해지고, 실효성이 의문인 재방방지책이들이 만들어진다. 이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재난 참사는 또다시 반복되고 거대한 상실을 경험한 이후 무엇이 달라졌는지 알 수 없는 공허함만이 남는다.

- 1029 이태원 참사 작가기록단,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이 사랑하는 일을 꾸준히, 오래도록 하시면 좋겠습니다. 저 역시 제가 사랑하는 일을 지속하며 간간이 안부 전하겠습니다. 마음이 지치는 날에는 연락할 곳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부디 무탈하시기를.

- 사과이모, <결국 나를 사랑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