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rospect

2024년 연간 서한

사명을 다해 지켜야 하는 소신

2024. 12. 18.

안녕하세요. 권태훈입니다.

이렇게 정식으로 인사드리는 건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한국의 정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하룻밤 사이 계엄 이슈가 지나갔고, 그 이슈에 대한 말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요. 이처럼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에는 뉴스를 생산하는 사람보다 잘못된 내용을 바로잡아 주는 분들이 더 귀합니다. 거짓된 정보에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이 사태를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올해는 작년의 많은 리스크를 떨쳐냈고, 괜히 욕심도 부려봤으며, 그만큼 많은 걸 내려놓은 한 해가 되었습니다. 운이 좋게도 훌륭한 여러분과 함께했기에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찬란이 가득하길 바라며, 이 글을 전합니다.

전역, 이직, 피봇

대한민국 공군의 지원율이 10년 만에 10:1이라는 최고치를 찍었습니다. 일반병 기준이며, 전체 모집 직종 기준으로는 9.4:1이네요. 운이 좋게 2년 전 공군을 지원했고, 올해 5월 말에 전역했습니다. 전역 자체는 크게 와닿는 게 없으나, 그곳에서 인연과 일의 배움에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올해 가장 큰 이벤트는 이직이겠지요. 스쿠버 다이빙 강사가 되었습니다. 개발자를 그만두었어요.

작년에는 다시 개발자로 일할 생각이었습니다. 훌륭한 개발자란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했으나, 잘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어보기도 하고, 타사에서 일하고 있는 개발자분과 미팅을 갖기도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경기가 안 좋기도 했지만,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동안 개발을 소홀히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겠지요.

실력이 퇴화했고,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며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고, 짧은 찰나에 많은 것을 내려놓고 새로운 전장에 뛰어들기 위한 준비를 마쳤습니다. 당시 보홀이 어딘지조차 모를 때, 친구 J가 일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고 그때 J에게 말했습니다. “나 강사 할래”.

J는 제주에서 만났습니다. 처음 스쿠버 다이빙을 배울 때 저를 알려준 사람. 스쿠버 다이빙에 빠지게 된 것도 좋은 스승을 둔 덕이겠습니다. ‘강사님’에서 시작했던 게 어느새 J까지 오게 되었네요. 많은 타이밍이 겹쳤고, 운이 정말 좋았습니다. 마침, 7월에 강사 시험이 보홀에 있었고, J가 있는 곳에서 곧바로 강사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바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6월은 아픈 한 달을 보냈습니다. 계획에 없던 백수로의 한 달이었고, 기약이 없었습니다. 주변은 전역을 5월에 했는데 한 달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냐며 위로했지만, 글쎄요. 위로라는 말로 가볍게 넘기기엔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았지만, 허전함은 여전히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습니다. 대학으로 돌아가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고요. 대학에서 분명히 얻을 수 있는 것이 있겠지만, 아직 대학에 관한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의 이념에 관한 생각을 적어낸 글이 있으니 참고하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인생을 피봇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방황했던 나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지금에야 제자리를 찾은 기분입니다. 이제 다시 길을 펴내야 하고, 이 길을 단단히 다져가며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작년 서한에서 말했듯, 10년 뒤에는 해외 어딘가에서 다이빙 리조트를 오픈하고 반기마다 푸드트럭을 타고 다니길 소망합니다. 이를 생각했을 때 이 시점의 피봇은 적절하다고 보입니다.

열, 하나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성스러운 일입니다. ‘장래 희망’이라고 하면 직업만 생각하기 바쁘던 때, 처음 적어낸 직업은 선생님이었습니다. 마음의 짐을 이겨내지 못하던 저를 구제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을 보고 많은 걸 느꼈듯, ‘나도 나중에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하는 생각이 가장 크게 작용했어요.

‘가르치다’.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사전에서는 ‘지식이나 기술 등을 설명해서 익히게 하다’의 뜻이 첫 번째로 소개됩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뜻은 가장 마지막 소개되는 다섯 번째. ‘살아가는 데 필요한 태도나 가치를 알게 하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생각하는 가르침의 존재 이유입니다.

열을 알아야 하나는 가르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생과 스승의 어감 차이가 있겠으나,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삶의 지혜를 전달하는 것이 사제지간이겠지요. 저는 그런 삶을 꿈꿔왔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아와서일까요. 생각해 보면 가르치는 행위 자체에서 많은 만족감을 느꼈고, 실제로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스쿠버 다이빙 강사라는 직업도 결국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기에, 올해 하반기에는 어느 때보다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서툴렀고, 무엇보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더 공부했던 것 같아요. 아직 원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그 수준을 낮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많이 알려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공부해야겠지요.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공부하는 사람으로, 평생을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희망합니다.

에포케(Epoché)

올해 신하영 작가님의 메일링으로 에포케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에포케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사용했던 말로 ‘판단 중지’를 뜻한다고 해요. 이런저런 판단은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공감 코스프레. 경청만 잘해도 반은 간다는데, 이런저런 판단을 섞어 스스로를 방어하기에 바빴습니다.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요.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최근에는 이런저런 판단을 섞는 면이 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차분하게, 천천히. 조금은 더 유하게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고독과 연결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다정한 사람입니다. 사랑해야 다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언제나처럼,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간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혼자라서, 근데 그게 외로워서 인연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적습니다. 행복은 함께 나눌 때 현실이 되니까요.

고독을 느껴야 할 때가 분명 존재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부재하더라도 서로를 믿어주며 거리를 존중하는 사이가, 친구가, 애인이 있어 줘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래 유지혜 작가님의 <우정 도둑> 문장을 그대로 옮깁니다.

“부재는 존재를 증명하고 상실을 통해 사랑의 소유를 실감하게 된다.”

“내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이 아니라 떠나가지 말라는 말로 표현하는 사랑. 네가 없는 세상을 미리 그려보고, 그 세상의 허무함을 미리 깨달아 더 충실히 붙잡아 놓는 사랑.”

“아름다운 안심은 두 사람이 온전히 각자 존재할 때 태어났다. 연인이 있어도 여전히 나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사랑. 때에 따라 친구였다가, 애인이었다가 하는 변형 가능한 유연한 사랑. 그 믿음은 활활 타지는 않았지만 결코 꺼지는 일이 없었다. 바람이 통하는 사이. 그 바람의 선선함은 영원을 뜻했다.”

아름답다는 말에는 앎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을 안다는 건 그 사람을 많이 생각한다는 뜻이겠지요. 그래도 너무 자주 보면 오히려 서로가 아플 수 있으니, 우리 가끔 오래 봐요. 영원히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음의 비술

자, 이제 죽음에 관한 얘기를 해봅시다.

사망, 별세, 작고, 타계, 영면, 운명. 수많은 단어로 표현되는 죽음은 알게 모르게 우리 곁에 잔재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셋을 올해 떠나보냈고, 이는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당장 언젠가 스스로 죽음을 맞이해야 할 때 세상사에 남아있는 이들을 조금이라도 더 생각하기를.

망자에게 약속했습니다. 어리석게도, 좀 더 일찍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이보다 무거운 약속이 있을까요. 사명을 다해 지켜야 하는 소신. 살아내야 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살아져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먼저 삶을 소진한 그들은 죽음까지 함께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투명한 마음에 하늘을 가득 담은 밝은 모습을 기억하기를. 우리 애써 웃는다면, 웃을 수 있을 테니까. 슬픔에 매몰되어 추억하기보다는 삶의 지표로 삼아 행복의 동력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주만큼 사랑하니까.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일부라는 하루키의 말처럼, 죽음을 오히려 기다리자며 죽는 법을 깨닫고 모든 예속과 억압해서 해방되자는 몽테뉴의 말처럼, 두려워하기보다는 이겨낼 수 있기를, 살기를. 운명이 우리에게 보내주는 시련을 참을성 있게 견뎌내기로 해요. 우리의 시간이 오면 공손히 죽음을 맞이하고 내세에서 말할 수 있기를. 우리가 얼마나 괴로웠고,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추억했는지 말이에요.

건강

최고의 자산은 건강입니다.

저의 경우 거의 매일 바다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볼 때 평균 하루 1,200~1,800kcal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이는 제 신체를 기준으로 고강도 서킷 트레이닝을 약 3시간 정도 진행한 후의 칼로리 소모와 비슷합니다.

또한 스쿠버 다이빙은 다양한 신체적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심박수를 높이고 혈액 순환을 촉진하여 심혈관 건강을 개선하고, 수중에서 근력을 활용하여 무게를 지탱하고 움직임을 조절하므로 상체와 하체 근육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신적 건강도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이전에 해왔던 어떤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은 스트레스를 제공합니다. 스트레스 자체를 크게 느끼지 않는 편이지만, 이것이 쌓이다가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단계는 아니에요.

아침과 점심도 거르지 않고 있고, 적당량을 항상 먹고 있습니다. 너무 짜지 않게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고, 언제나처럼 양념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다만 저녁이 문제라면 문제입니다. 올해 8월부터는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있어요.

술은 소주입니다. 가끔 맥주 한 병 정도를 마시기도 하지만, 하루에 소주 2~3병을 마시고 있어요. 안주는 잘 챙겨 먹고 있지만, 술이 건강에 좋지 않은 건 알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술을 줄이거나 아예 안 마시면 좋겠지요. 하지만 아직은 조금 더 마셔보려고 합니다.

정신 건강에는 오히려 술이 더 나아 보이거든요. (웃음)

여전히 잠에서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일 년 중에 푹 잔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수면을 이루지 못해요. 그래도 오후 11시 이전에 자려고 침대에 눕지만, 술자리가 길어질 때면 그조차도 어렵게 됩니다. 내년에는 좀 더 잠을 잘 이룰 수 있기를. 무엇보다 저는 당신이 편안한 밤을 보내고, 깊은 잠을 온전히 누리면 좋겠습니다.

감사의 말씀

연간 서한은 제가 여러분께 보내는 러브레터입니다. 회고의 성격을 띠지만, 결국은 보고 싶다는 말을 돌려 했어요. 자주, 그리고 원하는 때에 찾아뵙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친 현실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우리가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서로 그리워하면서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우리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하기로 해요. 얼마나 슬펐고, 얼마나 기뻤는지. 그리고 이 순간에 당신과 함께여서 너무 행복하다고.

올해는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이름의 첫 자를 영어 이니셜로 언급하면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를 아는 분들이라면 본인의 이름임을 아시리라 믿습니다. 모든 분의 이름을 언급하지 못하지만,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여러분 덕분에 한 해가 풍요로웠어요.

군인이던 때, 저는 군인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식당에서 함께 일하면서 얻은 것이 너무 많았고, 어렵지 않게, 재밌게 군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잘 정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반장님, 주무관님들, 그리고 중대장님을 비롯한 모든 간부님과 후배였지만 많은 영감이 되어준 J와 Y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중대장님 J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친구 J와의 추억도 더 많이 쌓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언제나 저를 반겨주는 S, H, D, M에게 고맙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정말 보기 어려운 친구들이기도 해요. 저를 포함해 D는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모두 함께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연락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기를. S는 11월에 보홀에 왔습니다. 친구에게 스쿠버 다이빙을 알려주고 자격증을 제 이름으로 발급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언제나 귀감이 되어주는 B, D, T에게 고맙습니다. 이들이 있어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습니다. 위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자주 보기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 시간을 내서 조금이라도 더 볼 수 있기를 바라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함께할 때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아무 생각 없이 놀 수 있는 우리가 참 좋습니다.

그리고 D. 친구 D는 동생과 함께 10월에 보홀에 왔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 친구 W와 셋이 만났을 때, 스쿠버 다이빙 배우러 가겠다고 한 말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어요. 제 친구 중 처음으로 제게 스쿠버 다이빙을 배운 친구입니다. 4일간 교육하면서 동생이랑도 친해졌고요. 다이빙이 끝나면 함께 저녁 먹고, 술도 한 잔 하면서 오손도손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온다고 했을 때 그때 그 기쁨을, 공항에서 픽업하려고 기다릴 때 그 기대를, 공항에 내려줄 때 그 아쉬움을, 아직도 잊지 못해요. 많이 아끼고 애정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행복한 일주일을 보냈어요. 그들에게도 그런 시간이었기를 바랍니다.

강사 시험을 함께 준비한 삼촌들과 강사가 될 수 있도록 힘써주신 사장님께도 고맙습니다. 덕분에 단기간에 많은 것을 배웠고, 또 배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준 우리 J에게 고맙습니다. 저의 스승이자, 직장 동료이자, 친구로서. J가 있었기에 저는 좀 더 빠르게 일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정말 많이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 최고의 복지가 가장 뛰어난 사람과 믿고 일할 수 있는 것이라면 저는 최고의 복지를 누리고 있어요. 매일 함께 있다 보면 싸울 법도 한데 배려해 줘서 고맙고 저도 더 많이 배려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표현을 안 해서 미안해.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요.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좀 더 효도할게요. 자주 연락드리겠습니다.

1년은 길고, 분기는 짧습니다. 오랜만의 인사라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줄이고 줄였는데도 긴 서한이 되었네요. 작년과 마찬가지로 내 사람들에게 수필 편지를 올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꼭 어떤 이벤트가 아니더라도 편지를 전할 수 있는 날이 오면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올 한 해도 저와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 고맙습니다. 건강하고 평안하길.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올해 찾고 써낸 제 마음속 최고의 문장을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렇게 사소하고 시시한 하루가 쌓여 계절이 되고, 계절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걸 배웠다.

- 김애란, <바깥은 여름>

지혜의 가장 명백한 증거는 명랑함

- 미셸 드 몽테뉴, <수상록>

사랑해서 닮는 게 아니라, 닮아서 사랑하는 것

뭐든지 제일 잘하는 사람이 가르쳐준 걸 정확히 따라 하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전 잘 모르니까요. 똑같이 따라 하게 됐을 땐, 이 사람보다 더 잘할 방법을 고민했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뭐든 제가 제일 잘 만들었어요.

돌이켜 보니, 전 항상 제일 어려운 길을 선택했어요. 제일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 그게 제일 좋은 결정이었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의 노하우나 디테일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어깨너머로만 배울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작은 차이가 완성도를 판가름하죠.

어떤 사람들은 웃으면서 일하는 게 행복인 줄 아는데,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내 모든 걸 집중해서 치열하게 노력한 끝에 좋은 결과를 얻을 때, 그 행복이 훨씬 크고 보람차요.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근데 전 그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거든요.

- 안성재 셰프

포기를 하면 핑계거리를 찾고, 의지를 가지면 방법을 찾는다.

저는 나이를 생각하지 않아요.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죠. 내 건강의 기준은 나이가 아니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느냐, 아니냐니까요.

- 이길여 가천대 총장

상실은 바다에 가라앉아 보지 못했던 사랑의 부표를 하나둘씩 지상으로 올렸다. 떠나간 그가 보고 싶어 하늘을 보다, 너무나 많이 올라온 부표를 보다 숨이 막혀버린 적이 있다. 그가 내게 준 사랑이 우주만큼 거대했기 때문이다.

- 신하영 작가

과거의 혜안은 때론 현재를 관통한다.

불길한 망령은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슬그머니 찾아오며 상상만 하던 비극은 너무나도 쉽게 적나라한 현실이 된다.

-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옳음보다는 행복을.

왜곡된 이미지와 의미를 상실한 말들이 24시간 잔치 중인 세계에서,
잔치에 동조하지 않는 자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우울과 불안.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내면을 향한 공격성일지도 모릅니다...

푸른 바다와 거대한 회색 사일로 사이의 경계처럼,
이질적인 두 세계 모두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인데,
어느 쪽이든지 일방적인 망명을 요구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의 거짓말의 이면에 깃든 욕망의 구조를 파악해보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배움을 수신의 과정으로 삼는 고전적 극기의 길이, 좌충우돌 예술의 길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게 만드는 세상을 향해,
가끔은 "지랄한다"고 말해줄 수 있는 힘과 유머를 장착하시길, 기원해봅니다^^

- X, @bikebawar

하나는 네 소원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네 소원만큼 간절한 다른 누군가의 소원을 위해서.

- 패트릭 브링리, <나는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하지만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구한다는 건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막는 것인데 나는, 우리는 언제나 일이 일어난 뒤에야 그것이 위험했음을, 우리가 위태로웠음을, 세상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안다. 항상 먼저 간 이들이 남은 자들을 구한다.

- 천선란, <이끼숲>

평탄한 사랑을 음악이나 영화로 만들면 그만큼 지루한 게 없는 거 같거든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첫 문장도 이렇게 시작하잖아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으로 불행하다.’ 사랑도 마찬가지죠. 다 다른 모습으로 파국을 맞아요. 그게 정말 재미있고 맛깔나죠. ‘상처’라는 전리품도 얻고요. 상처가 모여서 성숙한 인격체를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여성이라면 더욱 진짜 원하는 게 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보통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도록 사회에서 교육받잖아요. 그럼 어떨 때 행복한지 놓치기 쉬워요. 솔직히 말하면, 전 일하는 시간 외에는 놀 궁리만 하며 지내거든요.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까. 시간이 나면 뭘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분들 많더라고요. 그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거예요. 유한한 삶을 알차게 살다 죽으려면 이걸 깨달아야 하거든요. 내면으로 침잠해보는 것, 살면서 꼭 해보면 좋겠어요. 그걸 다른 말로 명상이라고 하잖아요.

- 김윤아 가수

꽃은 웃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다.

새벽에는 미래를 살고,
낮에는 현재를 살고,
밤에는 과거를 산다.

추억을 살며시 살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오늘을 치열하게 살고,
그 치열함 속에서 틈틈이 행복도 하면서,
미래를 선명하게 그려나가자.

우리는 모두 천천히 달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 천선란, <천 개의 파랑>

유한한 수명 속에서, 매일 매일 삶의 끝으로 다가가는 우리가, 단 일분 일초라도 허투루 살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신께서 계속 우리를 독려해주시리라 믿습니다.

- nomad